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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각(知覺)은 순간 발생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수 없이 많은 
기억된 요소들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
- 앙리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1896

Your perception, however instantaneous, consists then in an incalculable 
multitude of remembered elements; and in truth every perception is already memory.  
Henri-Louis Bergson, Matter and Memory,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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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동지>는 소리의 진동과 다채널의 음파를 이용한 미디어아트 설치 작품이다. 작가의 고향인 남해안 도서 지방에 부는 한 겨울날의 실제 바람 소리의 음파, 그리고 기류가 건물이나 나무 등의 물체와 부딪치며 내는 바람 소리의 물리학적 상황들을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72채널로 실시간 재현(simulation)한다. 그 결과, 한지 종이에 부착된 변환기로 흘러 들어간 바람과 소리의 요소들이 공중에 매달린 한지의 표면을 진동시킨다. 공중에 매달린 수많은 한지는 바람 소리를 울리는 소리의 근원지가 된다. 한지 사이를 걷는 관람객은 모든 곳에서 들리면서도 딱히 어디서 들리는지 모르는 신비한 소리의 방향감을 경험하며 강한 몰입감에 휩싸인다.
종이는 오랜 세월 인간의 문화에 필수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 중에서도 닥나무 섬유로 만든 한지는 빛과 바람, 습기의 자연현상과 친화성이 강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던 한국인의 문화적, 정신적 전통이 베어져 있는 우리의 정서에 친밀한 매체이다. 한지 표면을 통과하는 소리의 진동은 물질성에 국한된 종이의 단순 떨림이 아니다. 인간과 사물 간의 서정적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마음의 울림으로 공진(sympathetic vibration)에 따른 개체 간 물리적 진동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동지>는 긴 겨울 밤 문풍지를 떨며 밤새 울어 대던 매서운 계절풍과 문풍지가 바람의 악기가 되고 바람과 일체가 되던 작가의 유년 시절을 토대로 한다. 더불어 수 세기를
걸쳐 한국인의 정서 깊이 새겨 있던 겨울 밤의 소리 풍경, 그리고 그 기억들에 바치는 작품이다.
황주리
황주리는 감각 체계와 문화적 대상물로서 소리(sound)가 21세기 문화에 가지는 역할을 탐구한다. 이론과 실기를 접목하고 과학과 의학 그리고 예술을 융합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연구와 작품은 본질적 성향인 신체와 촉각을 통한 경험(embodied), 몰입감의 경험(immersive), 그리고 감정적인 경험(affective) 측면에 주목한다. 또한, 듣는 방법이나 형식에 초점을 두고 소리에 대한 지각과 경험의 본질적인 변화를 조명한다. 현재 USC 의대의 Bionic Ear Lab의 일원으로서
미국 NIH(National Institute of Health) 후원하는 <음악 감상과 청각 상실> 연구에 참여, 인공 와우 수술을 통해 청각을 재생 받은 사람들의 청각 재활과 음악 감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작가노트
동지 (冬至), Nightfield – 작품 메모 1
겨울에 대한 나의 기억을 한 이미지로 응축한다면, 내가 자란 남해안 섬마을 위로 불어대던 바람과 바람소리다. 밤새 문풍지를 떨며, 동네를 삼킬 듯 불어대던 겨울 바람은, 외부의 질서를 집안으로 불러 들이며, 작은 방에 누운 어린 나에게, 밤의 세계, 우주, 그리고 나의 존재 등의 대한 끝없는 상념과 몽상에 빠지게 했었다. 바람소리가 위태할 수록, 수수한 집의 안락감은 커지고, 내면의 상념은 더 무한 해진다. 바람소리의 기억은, 그러나, 지나간 순간들을 상기시키는 데이터라기 보다, 내 안에 지속적으로 울리며, 나의 감각과 지각의 일부분이 됨을 나는 알게된다. 대학원이후 엘에이에 거주하게 되며, 그 겨울의 바람소리를 경험하지 못 하였으나, 나의 감각체계는 겨울을 기다린다. 간혹, 건물의 커다란 문이 빼꼼히 열린 사이로, 해괴한 바람소리같은 것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 바람소리는 문득 나를 멈추게 하고, 겨울의 순간들로 나를 보낸다. 
동지가 지난 12월, 이십년만에 첨으로 나는 바닷가 내 마을의 겨울 바람소리와 다시 만난다. 비행기, 기차, 그리고 택시, 하루 종일 걸리는 여정을 지나면 건너지는 엘에이와 내 고향의 거리, 그러나 셀 수 없이 수많은 날들에 펼쳐지던 엘에이와 내 겨울밤과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인가? 자정 넘어 깊은 밤, 먹물을 뿌린 듯한 어둠 속,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이고, 휘휘…귀신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불어대는 겨울 바람, 이미 온 동네를 점령하고 있다. 순간, 나는 그 풍경과 일체가 된다. 한치의 간극도 없이, 마치 한 번도 그 곳을 떠난 일이 없고, 시간은 존재하되 흐르는 것이 아니며, 밤세상에 바람과 나만이 존재했던 것같이, 나는 유유히 그 겨울의 질서에 합류한다. 그 풍경속에 나는 문풍지가 된다. 바람에 떨며, 바람의 악기가 되고, 바람에 일체가 되던 문풍지처럼, 내 존재의 모든 것 역시 그 소리진동의 파도를 타며 함께 진동한다. 바람소리의 기억은 단지 데이터가 아닌, 실존의 공명으로 나의 존재의, 나의 감각의 일부로 늘 내 안에서 울리고 진동하고 있었음을 나는 깨닫는다. 
엘에이에 돌아온 후, 떠나 왔으나, 마음은 차마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 한 듯, 나는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그 고향의 바람소리를 놓지 못하고, 일주일이 꼬박 지나도록, 서성이며,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뿌리 뽑힌 나무처럼 한동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생산적인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는 숨가쁜 도시에, 일상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그러나 아무리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인간적인 고통은 아무짝에도 쓸모가없으니, 어떤 의미를 부여하겠는가? 작품 동지는 그 고통 속에 시작했다. 그 인간적인 고통이 현실에서 거부되더라도, 나의 작품의 거름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우리의 현실 속에 지속되는 내면에서의 울림, 인간의 지각과 기억의 바탕이 되는 서정성에서 시작하여, 더 구체적으로는 소리와 기억의 강렬한 진동과 울림을 바람소리에의 감성적인 몰입, 사색적인 체험으로 경험할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CV
<황주리> (b.1970)
서던켈리포니아 대학교(USC) 인터디시플리너리 미디어 예술 & 실기프로그램 박사과정

주요 활동 경력
2020 인공와우와 청각장애 어린이의 청각재활/듣기훈련을 위한 다감각 게임
< Scurry Along, Soundtoy Experience> 발표, 2020 도쿄 게임 박람회, 도쿄, 일본
2019 미디어아트 설치작<나이트필드(Nightfield)>, <소메틱 에코(Somatic Echo)> 전시,
Currents 뉴미디어, 산타페, 미국
2018 다감각 게임 < EJ를 위한 듣기 게임 Soundtoy for EJ> 발표, Stage 4,
로스엔젤레스, 미국
2017 <수양 대나무(Weeping Bamboo)> 가상현실(Augmented Reality) 사운트워크 발표,
ISEA2017 마니잘레스, 콜롬비아
2017 미디아아트 설치작 <나이트필드> 발표, SCA 갤러리, 로스엔젤레스, 미국
2017 오디오 비주얼 설치작 <6가와 산 페드로(6th and San Pedro)>, iMAPpening,
로스엔젤레스, 미국
2016 <소메틱 에코(Somatic Echo)> 전시, Beall Center, 얼바인, 미국
2015 <소메틱 에코(Somatic Echo)> 발표, iMAPpening, 로스엔젤레스, 미국
2014 음향 설치작 <샘플링 Sampling>, 음향 퍼포먼스 설치작 <네모폰Mnemophone> 발표,
Stage 4, 로스엔젤레스, 미국

수상 . 선정 . 레지던시
2021 참여 예술 <여기, 나의 목소리 (Here, My Voice)>,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의 Arts in Action
Grant 수여, 현재 감독 중
2017 <소메틱 에코(Somatic Echo)>, Prix Ars Electronica 2017, 전자음악 + 사운드아트
부문 Hononary Mention 수상, 린츠, 오스트리아